4월 2일 부스트캠프 AI Tech 6기 과정이 끝났다.
이후 취업 스터디에 참여하여,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피드백을 받고, 모의 면접을 진행하고, 서류 지원을 하고, 서류 탈락을 하고, 지인들과 최대한 근황토크도 하면서..
많이 바빴던 것 같은데
늘 돌이켜보면 무엇을 했는지 잘 설명이 안되는 그런 날들이 있었다.
사실 어제 면접을 보고 왔다.
끝나고 KFC에 앉아 랩을 하나 시키고, 이게 바로 힙합이지 하는 말장난이나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1시간 가량 지나있었고, 부랴부랴 잊어버리기 전에 면접 후기와 피드백을 작성하여 저장하였다.
취업 스터디 때 공유할 좋은 소재 거리가 하나 작성되었다.
앞으로 이제 뭘 해야하지...
공부를 위한 공부는 하기 싫고, 나를 위한 일들을 하고 싶은데..
생각을 되뇌이다가
변성윤 마스터님이 이전에 알려주신 " 나의 삶의 지도 " 가 떠올랐다.
삶을 한번 반추해보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일들을 정해봐야지.
나는 삶을 살겠다
2014년 재수를 준비하던 중, 이모가 돌아가시고 공황 장애가 찾아왔다.
제정신이 드문드문 돌아왔어서 당시 기억은 흐릿한데
한의사 선생님한테 "언젠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 생활을 보낼 수 있을까요" 라고 울면서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살아있는 기분이 아니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사람은 왜 사는거지라는 철학적인 궁금함이 있었는데
경험적으로 살아야겠다라는 결론을 어쩌다보니 먼저 내리게 되었다.
9월 말 쯤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져서 그때부터 공부해서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쉬움 하나 없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고3 때는 일년 내내 열심히 해야 만족감을 가지고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재수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수능 한 달 전에 열심히 공부했더니, 내 뇌가 마치 일년 열심히 공부한 거 처럼 만족하는걸 보고 단순하다 싶었다.
당시 "회복탄력성" 이라는 책도 열심히 읽었었는데, 지금은 내용이 잘 기억도 안나고 다시 읽고 싶지도 않다.
여튼 그 뒤로 나는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최대한 잘 살아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이모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아프면서,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고, 뇌에 기형 혈관종이 생겼다.
그리고 감마선 나이프 시술을 받게 되셨다.
당시 금융 학도로서 방학 때 금융 사관학교에 다니던 나는
기형 혈관종은 잘못하면 선천성 질환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선천성 질환은 보험료를 지급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중대함의 여부에 따라 기형 혈관종이 암으로 취급되어 보험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결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금융 사관학교 선생님이셨던 키움 증권의 신동원 선생님께 상담을 드렸다.
선생님은 손해사정사 선생님을 소개 해주셨고,
결국 실비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어, 어머니는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셨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고,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해도 무서운 일이다.
이때를 계기로, 삶에서 선택지라는게
단순히 나에게 찾아와, 할지 안할지 선택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미처 선택지라고 생각 못해서 감당하고 있는 일 또한 분명 있을 터였다.
덕분에 인생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게 되었다.
이때 폴 칼라나시의 "숨결이 바람 될 때" 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었는데
가족이 아플 때, 의연하게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와 관련해 꽤나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책이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혹시 나와 같은 아픔이 있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학점 4.5 찍었던 과탑이 학점 2점대를 찍다
적고나니 심히 제목이 자극적이다.
1학기 4.5, 2학기 4점대 초반을 찍고, 면접을 봐서 나는 분캠에서 본캠으로 전과를 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학점 2점대를 찍었다.
변명을 하자면, 2학년으로 들어간 새로운 과에서의 적응이 어려웠고, 그리고 활동도 이것 저것 많이 했었다.
2016년 당시 했던 활동들로는
1. 창업 동아리 활동
2. 멋쟁이사자처럼 4기 조장 활동 ( 루비 온 레일즈로 처음 웹 프로그래밍을 접했다. )
3. 태권도부 동아리에 들어가 태권도 경기 참여, 1차 탈락
4. 아르바이트
5. 새로 사귄 과 학우들과의 교류
6. ETC
뭐가 많았다..
당시 교내 랩 동아리에서 진지하게 래퍼를 준비하던 학우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수능 공부를 하며, 다들 같은 라인을 따라 달리는줄만 알았는데
대학을 오니 다들 각양 각색의 인생에 각자의 길을 달리고 있었다.
해보고 싶은 건 많았고, 안해본 건 잔뜩 있어서 최대한 다 해보려고 했었다.
나도 나만의 길을 찾아서 달려보고 싶었다.
306시간의 봉사활동
2017년 요양센터에서 공익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르신들과 많이 친해졌었다.
18년부터는 주말에도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19년 말까지 요양센터와 아동센터 등을 합쳐 총 306시간의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치매 어르신들께 봉사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지만, 생각보다 어르신들과 정이 많이 들고 배우는 점도 많았다.
어르신을 안아 휠체어로 이동할 때는 어르신 다리 사이에 내 다리를 무게 중심을 놓아 분산시켜야만
나도 안전하고, 어르신도 안전할 수 있는데 마치 이 과정이 봉사활동과도 같았다.
누군가를 케어한다는 것은 한 발짝 더 내미는 일에 불과하며, 이는 상대방과 나를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일.
정신적으로도 힐링이 많이 돼서 좋았다.
사회에 기여하며 사는 삶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왕년에 경제학도
2019년 학점이 잘 나오고, 학점 우수자 파티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경제학에 자신감이 생겼다.
경제학이 뭔지도 좀 알 것 같았고, 같은 학우들을 대상으로 경제학 과외 같은것도 하면서 자신감이 배가 되었다.
국내에서 경제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은행에 모여있다는것을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한국은행을 진로로 잡고 공부하게 되었다. (자신감이 미쳤었다)
2021년 학교 학점을 거의 다 채우고, 이후 본격적으로 스터디를 모집 및 진행하게 되었는데
서울대 친구에게 사정해서 공부 자료를 받고, 합격한 분께 연락해서 자료를 구매하고,
동태경제학을 배우기 위해 타 학교 수업 청강을 듣고 했었다.
그렇게 21년 말 시험에서 떨어졌고
내가 하고 싶은게 정말 이게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1.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일 수 있는가?
2. 지속적인 자기발전이 가능한가?
진로 선택에 있어서 내 가치관은 다음과 같았고
한국은행에 합격한 친구와 선배님의 후기를 들어보니 "지속적인 자기 발전"과 관련있는 직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2022년 4월 경제학도를 그만하기로 하였고, 진로를 변경하게 되었다.
1년에 20명 뽑는 곳에, 내가 만든 스터디에서 2명의 합격자를 만들었으니
그래도 나름 제대로된 스터디였던 셈이다. 하하
합격한 둘에게 감사 인사도 받고, 나중에 밥도 얻어먹었었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오히려 기뻤고, 뭉클했다.
그날은 감사를 받는 자리임과 동시에 나 스스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해서 그만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날이기도 하였다.
데이터교의 새로운 교도
유발 히라리의 "호모데우스" 라는 책을 읽으면,
인류의 관념적인 트랜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설명하는데, 그 중 책의 끝무렵에 데이터교 라는 말이 등장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은 생화학, 전자 등의 이공 계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의 인문 계열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갈수록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데이터 처리 방식에 따라 우리의 삶이 변할 것이다라는 글이 적혀있는데
실제로 Data-Driven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머신러닝이 나오고,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으니, 2015년에 작가 유발히라리는 인간의 미래를 예견한 셈이다.
나는 2018년에 해당 책을 읽었고, 그 뒤로 Data라는 키워드에 대해 약간의 끌림을 느끼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한국은행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고,
동태 경제학에서 배우는 내용과 인공지능 모델의 학습 수행에서의 과정이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더 눈에 밟혀서,
데이터 직무는 "진로 후보"에서 "진로"로 그 위치를 격상하고만 것이었다.
1.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일 수 있는가? ( YES )
2. 지속적인 자기발전이 가능한가? ( YES, 필수적 )
그 뒤로는 불도저와 다름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AI 엔지니어 스콘 입니다.
어떻게 해야 해당 직무를 준비할 수 있는지 아는 바가 없어서, 바로 부트캠프를 접수하고 수업을 듣게 되었다.
22년 4월, 데이터 직무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었다.
22년 11월, 부트캠프에서 우수 수료한 후 추천을 받아 스타트업에 입사하였다.
23년 11월, AI를 본격적으로 정말 잘하고 싶어서, 네이버 부스트캠프 AI Tech 에 참여하였다.
24년 4월 2일, 부스트캠프 AI Tech 6기를 수료하였다.
부스트캠프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와 자극을 받았다.
현재는 함께 으쌰으쌰 하며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되고 싶은 모습
23년 5월 쯤 "Visualizing for the Non-Visual: Enabling the Visually Impaired to Use Visualization" 라는 논문을 읽었다.
이 논문은 차트 자료로부터 정보를 추출해, 새로운 대화형 표현을 사용해 재시각화하거나, 검색용 색인으로 제공하거나, 청각 자료로 제공하는 딥러닝 파이프라인을 소개한다.
이러한 변환은 눈이 불편한 이들 뿐만 아니라 시각 정보를 더 잘 이해하려는 모든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나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차트 자료가 눈이 잘 보이는 사람들 만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을 깼고,
심지어 눈이 잘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편의를 제공하는 기술인 셈이다.
나는 이처럼 기존의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사용자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편의성을 발견하며 구현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정리...
오늘 오후 4시쯤 시작한 글이 약 8시간이 걸려 마무리 되었다.
그동안의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었고, 내 가치관의 형성의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위 나열된 문장 가운데 그냥 쓰인 말은 거의 하나도 없다.
가령 "사용자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편의성" 이라는 말도,
이전에 다닌 스타트업에서 심장 판막 수술 시뮬레이션 구축과 관련해 의사분들의 요구사항을 기록하던 중에 느꼈던 경험이 담긴 문장이다.
"팀장님 하지만 그부분은 의사분들 요구 사항에 없었는걸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팀장님은 대답하셨다.
"그래도 일단 넣어봐, 사람들은 의외로 일단 서비스를 제공 받고 나면 본인이 미처 몰랐던 편의성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거든"
꽤나 충격이어서 노트에 잘 메모해두었고,
이처럼 오늘날의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문장으로 남아 기록되었다.
나는 남들보다 피드백을 꽤 잘 받아들이는 편이고,
따라서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잠재력이 높다.
꾸준히 그리고 앞으로도 성실하게 '나'라는 역사를 빼곡히 기록해 나갈 수 있기를.
지속 가능한 기술 발전과 관련한 업무에 참여하여 전문성과 역량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꽤 긴 글이었다. 앞으로도 빠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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